소통

‘책쓰기’ 강좌가 출판계 불황을 강화하는 이유에 대한 무의미한 고찰

정작가 / 2022-06-22
기이한 현상입니다.

책은 그토록 안 팔리는데, 책을 내고 싶다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다니 말이죠.

사회 각 분야에서 이름 대면 대충 알 만한 유력 인사, 전문가, 셀럽, 인플루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유명하면 유명한 대로 무명이면 무명인 인채로 그렇게들 자기 이름을 단 책을 내고 싶다며 줄을 선답니다. 살 만큼 살아보니 이제야 인생을 좀 알 것 같다는 어르신들에서부터, 인생 2막을 생각하는 40~50대 장년층, 무모함이 재산인 20~30대 청년층, 10대 청소년층에 이르기까지 세대마저도 아우른다니 출판에 대한 로망으로 세대 간 대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혼자 혹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탓이라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제 안으로 돌리는 계기가 되어서, 그러니까 바삐 사느라 놓쳤던 성찰의 시간을 그 ‘망할’ 바이러스가 가져다주는 바람에 그리된 거란 견해죠.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팬데믹 훨씬 이전부터 이미 그런 추세였습니다.

출판업은 유사 이래 불황을 면치 못하는데,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겠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글쓰기 혹은 책쓰기 강좌가 그 추세를 반영합니다.

그나저나 ‘글쓰기’ 강좌는 알겠는데, ‘책쓰기’ 강좌는 또 뭐란 말입니까?

- ‘책’을 어떻게 ‘쓴다’는 거야?
- ‘책’이라고 쓰면 책이 되나?
- ‘책이 될 글’을 쓰는 거겠지!
- 무릇 ‘글’은 ‘쓰는 것’이고, ‘책’은 ‘내는 것’ 아니었던가!

내심 이런 딴지를 걸면서도 여기저기에서 하도 ‘책을 쓴다’고 해대니 생각은 바뀌지 않았어도 귀는 점차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글을 쓴다’는 것과 ‘책을 쓴다’는 것을 구분해보기도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를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그러니 대체로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일기나 수필이 그렇습니다(애초에 누군가에게 읽혀 특정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쓰는 글은 물론 예외입니다).

반면 ‘책을 쓴다’는 것은 상대, 즉 독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읽히고, 메시지를 전달할 작정으로 쓴 글들의 모둠입니다. 독자가 듣기를 원하는 말을 하는 가운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넌지시 전하는 것, 이를 위해 책은 온몸으로 독자를 유인합니다. ‘나를 좀 읽어달라’고 말이죠.

그러므로 책을 쓰고자 한다면-아니 책이 될 글을 쓰고자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말 사이의 교집합을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잔뜩 늘어놓게 될 공산(公算)이 크지만 그나마 그 교집합에서 출발해 가는 동안 가끔 한두 번씩이라도 ‘내 말에 과연 사람들이 귀 기울일까?’,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궁금해할까?’를 생각해본다면 내가 쓴 글이 책이 될 가능성도 조금은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책 한 권 내고 싶은 로망의 소비층이 두꺼워지자 꽤 많은 ‘책쓰기’ 강좌에서는 이미 출판되어 나온 수많은 책들 중에 나도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해도 되는 이야기, 내가 할 법한 이야기, 내가 한 것 같은 이야기들을 추려 손쉽게 책을 쓰는 비법을 전수하기도 한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이야기 사이에서 찾아야 할 교집합을 엉뚱하게 이미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이야기 중에서 찾는 거죠. 그러고 친절하게도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을 적정 비율까지 알려준다고 합니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그 결과 저자의 이름을 가리면 누가 냈어도 크게 상관없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도 같고 읽어본 것도 같은 내용의 책들이 가뜩이나 불황인 서점가에 깔리게 됩니다. 그러면 영민한 구매자들이 돈을 쓸 리가 만무합니다.

아직도 책은 징하게 안 팔리는데, 책을 내겠다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 이 기이한 현상을 부추기는 건 어쩌면 그 많고 많은 ‘책쓰기’ 강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감 임박

마감임박 강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